오늘은 드디어 장기간의 부다페 여행을 마치고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는 날. 아기와 함께 하는 외출은 최소 30분~1시간은 일찍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준비해도 제시간에 준비된다. 헝가리를 떠나는 프라하에 가는 기차가 아침 9시라 우리는 매우 일찍부터 부랴부랴 준비했다.
볼트(Bolt)로 택시 부르기
남편은 볼트 어플로 뉴가티역까지 가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부르면 거의 바로 오기 때문에 짐이 많은 우리는 짐을 다 내려놓고 택시를 불렀다. 도착한 기사아저씨는 매우 파이팅이 넘치셨고 심지어 배우처럼 잘 생기셨다. 내 기억엔 로다주 st?!
부다페를 떠나는 날 날씨가 좋았다. 이 도시에 대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날씨마저 배웅해주나 보다. 우리의 첫 장기여행. 평화롭고 여유롭고 행복했다.
내려서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재차 기사님께 여쭤가며 입성한 뉴가티 기차역 안. 올드하지만 '옥색'의 컬러감과 헝가리국기, 유럽연합 국기가 뭔가 느낌 있었다.
예전에 혼자 유럽 여행에 갈 때 기차표며 숙소, 이동수단 일체를 직접 찾아보고 결제했었는데, 이젠 남편이 이런 주용 이동수단을 다 예매해 주었고 난 그저 남편이 시간대와 원하는 좌석 등급을 물어보면 대답해 주었고 열심히 아기담당을 하였다. 그래서인지 현지 교통수단에 관한 정보력은 다소 떨어진다. 남편, 님 덕 좀 보겠습니다. 엣헴
남편 말로는 보통 프라하에 갈 때 부다페 기차를 타는데, 우리는 체코 기차를 탔다.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까지 - 7시간의 기차여행
기차에 탑승 후 남편은 짐칸에 짐을 싣고 오느라 좀 늦었고 나는 우리 좌석에 먼저 도착했는데 웬 덩치 큰 외국 남성분이 햄버거를 드시고 계셨다. 엇, 이거 또 표 확인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 살짝 당황했지만 그분이 날 보고는 이 자리냐며 바로 정리하고 일어나셨다. 나중에 우리끼리 한 얘기는 저분처럼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 올 걸 그랬다였다.
남편은 간단한 업무처리를 위해 노트북을 켰고, 나는 장시간 기차여행에 아기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준비했다. 좌석을 두 좌석을 살 걸 그랬나 싶게 다소 자리가 좁았다. 장시간 비행에 장시간 기차까지 아기와 함께하니 뭔가 항상 긴장이 되는 듯하다. 후우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 검표원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의 표는 남편의 핸드폰에 있어서 간편하게 QR로 찍어 확인했다. 참~ 좋은 세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바리바리 종이를 다 프린트해서 다녔는데 말이다. 특히나 IT계에 종사 중인 우리 남편은 더더욱 이런 시스템을 잘 이용하는 것 같다.
기차여행의 묘미는 바로 간식이라고, 전날 미리 사두었던 간식을 바로 꺼내 들었다. 식감이 스펀지 같기도 하고 마시멜로우 같기도 한 젤리를 냠냠 먹으면서 갔다. 간식 안 샀으면 어쩔 뻔!
아기 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낮잠에 빠진 우리 아기. 어디 딱히 눕힐 곳도 없고 의자가 뒤로 확 넘어가지도 않아서 불편했지만 그래도 조용히 잠을 자 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안고 있을 수 있었다. 괴로워하고 칭얼대는 것보다는 10000%는 감사한 상황. 우리 효녀.
기차네 매점 이용하기
우리는 바로 출출해져서 매점에서 뭔가 식사거리를 먹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 뚱뚱한 난민 같은 커플이 우리를 보며 뭐라 뭐라 해댔다. 영어가 아니어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딱 봐도 욕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눈을 똑바로 보며 계속 말했다. 가끔 이상한 호기가 발동하는 나지만, 아기와 함께 있으니 혹여나 칼부림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과대한 망상이 내 뇌를 스치고 지나가서 그 칸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헝가리에 있는 동안 아기와 함께 있는 우리를 보면 항상 좋은 눈빛과 언어로 대하는 사람들만 보다가 갑자기 떠나는 기차 안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너무 짜증이 났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랴, 더러워서 피하지란 심정으로 넘겼다.
매점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은 은근 다양했다. 그러나 우리는 간단하게 요기하기 위해 샌드위치와 브리또를 시켰다.
시킨 음식은 자리에 가져가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또 음식을 가지고 가는 동안 그 난민커플, 아니 정확히는 여자 혼자 엄청 뭐라 뭐라 해대서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남편이 다 먹은 접시를 갖다 놓으러 가는데 또 그래서 남편은 또라이냐는 몸짓을 했다고 하기에 내가 왜 괜히 미친년 도발하냐고 그런 녀ㄴ...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잔소리했다.
아무튼 우리가 시킨 음식은 보기엔 허접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매우 맛있었다.
그리고 또 2-3시간쯤 지난 후에 커피 한 잔 하고 싶어서 다시 매점에 갔다. 우리 옆좌석에 앉아있던 아들 동행 부부가 매점에서 둘만 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이 청소년이어서 자리에 그냥 두고 둘이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점이 매우 부러웠다. 우리 쀼도 언젠간 저렇게 여유 있게 앉아 수다 떨 날이 오겠지.
정말 딱 커피만 먹을 참이었는데 거기서 먹고 간다고 하니 결제는 나중에 한꺼번에 하라고 했다. 정말 딱 한잔만 먹고 일어났는데 그때 결제하려니까 갑자기 카드 리더기가 고장이 나서 한참 기다렸다. 그러게 아까 그냥 해주지.
창밖을 보면서 가는 풍경은, 그저 허허벌판 논밭일 뿐이었지만 이게 몇 개의 국경을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기차 내에서는 인터넷이 아예 안된다고 보면 될 정도였기 때문에 구글맵으로 대충 위치 파악만 했다.
어느덧 7시간이 지나 프라하에 도착을 했다. 열차 연착이 한 20분 정도 됐던 것 같다.
종점이 프라하 인지라 못 내리면 낭패를 볼 일은 없지만 장기간 기차여행은 당장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게다가 우리 세 식구가 다 같이 낭만적인 프라하에 왔다니!
꾀죄죄한 모습이지만 '프라하'가 쓰인 역간판에서 인증샷도 한번 찍어주었다.
남은 기간 동안 다시 올 일 없는 기차역. 도착하니 선선한 가을 날씨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역 앞에는 통나무 집 같은 가판대들이 줄지어 있고 그 안에는 긴 여행을 하게 될, 하고 나온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어쩜 가판대조차 낭만적이람?
돌바닥을 지나 숙소 찾아가기
남편이 내리기 전, 나에게 의논하기를 숙소까지 가는데 걸어서 10분, 차로도 5분가량 걸리는데 체코는 길이 돌바닥이 많아 캐리어를 들고 가긴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도보나 차나 그렇게 오래 안 걸리면 구경하면서 슬슬 걸어가 보자고 했다.
짐이 많지만 급할 것 없으니까 천천히 가보자.
남편은 워낙 지도를 잘 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초행길에 짐이 많고 아기까지 있으니 평소보다 훨씬 긴장한 상태로 길을 찾고 있었다.
한 5분쯤 걸었을까? 고풍스러운 국립박물관 건물이 있어 구경하며 오느라 힘든 줄도 몰랐다. 비록 돌바닥의 시작이라 캐리어 끌기는 다소 손이 아팠지만 말이다.
힘들어도 날씨가 좋은, 새로운 여행지에 오면 그저 웃음을 감출 길이 없다. 씐나 씐나!
점점 갈수록 숙소에 가는 길은 언덕을 향해갔고 주변에 파출소 느낌의 경찰서가 2개나 있었다. 뭔가 치안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에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문득 혼자서 이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니 왠지 숙소가 매우 낡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이 힘들어서 그런가. 그래도 실망하지 말고 잘 적응해서 지내보자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서 올라갔다.
그런데 웬걸? 내가 그동안 가봤던 에어비앤비 숙소 중에 TOP 5 안에 들 정도로 굉장히 깨끗했다. 그냥 새 건물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생각보다 기대했던 숙소가 건물자체의 낡음으로 인해 아주 마냥 깨끗하다고 할 순 없었는데, 이곳은 그냥 새로 입주한 것처럼 굉장히 깨끗한 건물이었다. 기분 급상승!!
https://minbeau.tistory.com/83
숙소에 대한 소감은 이전글에서 더 자세히 기재해 두어서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기로 해본다.
시내 둘러보기와 식사하기
우리는 짐만 풀어두고 곧바로 나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음 날 또 체코에서의 투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슬쩍 둘러보기만 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숙소를 찾느라 구경하지 못했던 길을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보고 있자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 그냥 계속 좋았던 것 같다.
최대한 햄버거 같은 것은 먹지 말자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지라 저녁을 팔 만한 그런 식당들을 찾아 쭉 내려가다 보니 하벨시장에 곧 다다랐다. 그런데 거의 6시가 다되어 가서 그런지 길거리 상점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하벨시장에서 뭔가를 먹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다음 기회로 미뤄두고 다시 먹거리를 찾아갔다.
가는 길에 아기 옷을 팔 것 같은 가게도 놓치지 않고 들렀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져서 아기 옷을 더 보충해야만 했는데 부다페스트에서는 아무래도 살만한 옷도 판매하는 가게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대형 문구점(마치 교보아케이드) 같은 곳이 있었는데 옷들이 딱히 맘에 드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와보기로 하고 패스.
밥부터 먹으러 가는데 아무래도 다 별로 안 당겨서 결국엔 KFC행.
프라하 KFC - 영어 소통이 완전히 안 되는.
남편은 계속 치킨이 먹고 싶다 해서 치킨을 시켰고 나는 KFC는 징거버거지! 하며 신나게 주문했다. 키오스크에서 시키는 건데 우리가 시키고 나서 영수증 및 주문표를 뽑으려는데 종이가 없어서인지 나오지 않았다. 그 옆에서 우릴 보고 계시던 점원이 우리 번호를 구두로 알려주셨는데, 우리는 주문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영수증까지 필요했기 때문에 영수증을 달라고 영어로 말했다. 그런데 그 점원은 우리가 자기 말을 이해 못 한 줄 알고 비웃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미소로 앞 데스크에 가서 우리 번호를 종이에 써서 주었다.
우리는 여전히 영수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본인은 영어가 안 되는지 앞에 직원에서 우릴 토스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우리 얘기를 듣지도 않고 계속 자기 말만 하며 우릴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때 우린 여긴 영어가 안 통하는구나 싶어서 번역기를 꺼내 체코어로 우리의 주문번호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영수증이 필요합니다.
하고 보여줬더니 다른 직원이 와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나는 하도 답답해서 혹시나 하고 다시 우리가 주문했던 키오스크로 갔더니 영수증이 떨어져 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냅다 주어 가지고 데스크로 가서 영수증 찾았으니 안 줘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글로벌 패스트푸드점인데, 그것도 수도 프라하에서, 가장 관광지에 위치한 KFC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이렇게까지 영어가 안 통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렇게 기 빨리는 햄버거 구매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있을 가이드 투어를 위해 빠르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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