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을 먹으러 따로 나가진 않았다. 전날 남편이 갑자기 시무룩해하며 내 통장에 아직 월급이 들어오질 않아서 당장 쓸 현금이 없다고 하는 바람에 갑자기 여행지에서 맞이한 긴축정책, '돈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돈과의 전쟁은 자주 시작되지만, 친언니 말로는 씀씀이 보면 전쟁은 하긴 하는 거냐며 의문을 가지곤 한다.)
유럽에서 6일 차 - 세탁하기
여행 6일차가 되는 오늘은 세탁 준비를 했다. 세탁기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아기 손수건 10장만 넣어도 꽉 차는 느낌이라 빨래를 여러 번 나눠서 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가져온 캡슐 세제는 두 개뿐이었고 캡슐 하나에 5kg까지 커버가 되는 거라서 아무래도 숙소의 세탁기에는 너무 용량이 많았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캡슐 사이사이에 있는 틈을 따라 잘라서 쓰기로 했다. 그리 세심하지 않은 나지만 이번만큼은 캡슐 안 내용물이 터지지 않게 아주아주 집중하며 섬세하게 작업했다.
MARKET POINT (해외식료품판매점)에서 점심거리 구하기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시간에 잠깐 숙소에서 식사를 하러 남편이 왔다. 직주근접이 이렇게 좋구나 생각하며 행복+
아기는 낮잠을 자고 남편이 집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점심거리를 사러 나갔다.
전날 뭔가 매콤하고 개운한 걸 먹고 싶어 했던 남편과 계속 라면이 먹고 싶었던 나는 마트에서 사 온 베트남인지 태국인지 외국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상큼하게 맥주도 사 보았는데 뭔가 먹어본 맛인데 별로 맛이 있진 않았다.
킷캣 시리얼은 좀 더 진한 초콜릿 시리얼일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그래도 남은 부다페 여행에서 간식거리로 두고두고 먹기 아주 효자템이었다.
그리고 오후 시간에 남편이 일정에 여유가 좀 생겨서 같이 머르기트섬에 가기로 했다. 사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와 아기가 둘 여행해야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직주근접의 직장 때문에 여유가 좀 생겨서 거의 모든 관광지를 같이 다닐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우리가 가려는 머르기트섬은 숙소에서 버스로 가도 되지만, 섬 근처에 기차역이 하나 있었다. 이틀 뒤면 체코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길을 좀 파악해 둘 겸 지하철로 가보기로 했다.
역시 역이 크다 보니 볼거리도 많았고 쇼핑할 곳도 꽤 있었다. 우리 아기 머리털이 부족하여 여자임을 어필하고자 머리띠하나 겟챠했다.
기차역을 두루두루 둘러보았다. 기차역이든 공항이든 이런 곳에 오면 보이는 여행객들로 나까지 덩달아 여행하는 기분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물론 아기와 함께하는 기차, 비행기 탑승은 늘 긴장상태여야 하지만 말이다.
기차역 빵집
지나가는 길에 빵이 맛있어 보여서 하나 사 먹어보기로 했다. 사실 그냥 노점에서 저렇게 두고 파는 빵집맛이라 봐야 편의점에서 사 먹는 빵 맛이겠거니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마트 빵도 그렇고 의외의 맛집이 가성비까지 최고니 여행의 행복을 상승시켜 주는 듯했다.
머르기트섬 워터타워 - Margaret Island water tower
https://maps.app.goo.gl/1SNk6BjP2jjQQQrf6
우리가 가려했던 머르기트섬 워터타워로 가려면 버스를 조금 더 타고 섬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워터타워는 문이 닫히고 폐허처럼 휑해서 들어가 보진 못했다. 당시 구글엔 분명히 영업 중이라고 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임시휴점이라고 쓰여있다.
머르기트섬 - 부다페스트 여행지 내 마음속 1위 등극
Margaret, 영어식으로 읽자면 마가렛이지만 여기 언어로는 머르기트인 이 섬은 전에 가이드 말로는 왕족의 신분이지만 호화를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길 원했던 머르기트를 기리기 위한 장소라고 했다.
그래서 공원 구경이나 슬슬 하자며 걸었다. 날씨가 화창했고 주변은 푸릇푸릇 풀밭이다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한걸음을 못 가 너무 좋은 환경에 한참 셔터를 눌러댔다.
세 식구 귀엽게 머리 맞대고 신발사진도 찍어보고 기분 좋은 아기 안고 달려보기도 하며 자연을 온전히 몸으로 느꼈다.
이렇게 좋은데 나와 아기 둘만 왔으면 너무 아쉬웠을 거란 말을 하며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더더욱 탁 트인 풀밭이 나왔다. 주변으로는 갈대와 붉은 꽃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어서 그 분위기가 한층 더 멋지게 더해졌다.
잔디 위에서 놀던 네가족이 있었는데 둘째가 우리아가와 월령이 비슷해보여서 같이 놀게 해주고 싶었다. 가족모임에 방해될까봐 그러진않았지만..
풀밭 바깥으로는 자갈돌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웬 숫자와 글씨들이 적혀있었다. 그냥 몇몇 개 낙서해 놓은 정도가 아니라 모든 돌들이 전부 다 적혀있었기에 이게 뭘까 궁금해하니 남편이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 각각을 뜻하는 의미를 담아 추모하는 돌이라고 했다. 세상에나, 많이 죽었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많았다니!
갑자기 숙연해진 마음으로 따라 걸으며 조금이나마 추모의 마음을 보태보았다.
한참 잔디밭에서 놀다가 출구 쪽으로 나가려는 길목에 간단한 블랭킷 하나 깔고, 나란히 누워 일광욕을 하시던 노부부를 보았다. 나였으면 이 햇빛에 기미 주근깨 어쩌나, 살 탈까 봐 선크림 덕지덕지 바르고 햇빛을 피해 있었을 텐데 저렇게 함께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시는 모습을 보니 참 평온해 보였다.
입출구 쪽에 다다르니 식당가가 쭉 들어서있었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 색들로 꾸며져 있었다.
부다페스트 사인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외진 곳, 상가뷰여서 혼자 괜히 아쉬웠다. 남편은 이곳이 자연친화적인 시민들의 공간이라 저런 구조물은 자연의 가운데 두지 않고 치우쳐 둔 것이 아닐까 의견을 냈다. 우리나라 한강시민공원처럼 여기도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옆에 도나강이 흐르고, 그 안에 드넓은 잔디밭이 있어 돗자리 깔고 앉아 온전히 힐링되도록 한 공간이지 않을까 싶다.
도심 속 자연을 만나 힐링을 하고 돌아가는 길 풍경은 너무도 평온했다. 그 햇빛을 맞고 있자니 왠지 낮잠이 자고 싶어졌다.
(그냥 피곤했던 건가....ㅋㅋ)
부다페스트 기념품샵
저녁을 먹으러 나가면서 곧 부다페스트를 떠날 때가 되어 혹시 기념품을 살 만한 게 있나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있던 꽤 큰 기념품샵인데 입구 창문에 한국어가 저기에 쓰여있는 걸 신기해하며 기념품샵으로 들어갔다.
어느 여행지를 가든지 마그넷을 사는 편이어서 마그넷을 구경하러 갔는데.. 음.. 이나라 MD 및 디자이너들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헝가리에 유명한 게 파프리카, 토카이와인 정도라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이렇게도 맘에 드는 마그넷이 없었던 나라는 처음이었다.
라벤더가 많이 나는 지역이 가까이 있어서 라벤더 관련 상품이 많이 있었다. 색에 반해 살 뻔했지만 딱히 쓸만한 게 없었다. 라벤더 향이 또 저런 상품으로 만들어졌을 때 호불호가 있기에 선물용으로도 망설여졌다. 파프리카 소스는 딱히 활용도를 찾지 못해 구매하지 않았다.
귀여운 커피들도 혹하긴 했으나 패스! 가판대에서 파는 물건들에 비해 가격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물론 가판에서 파는 건 진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여기라고 진품만 판다는 보장이 있으랴.
포크 앤 프레즐 (Porc & Prezli)에서 저녁식사
https://maps.app.goo.gl/PxTHtpgJCuEckwgc6
전에 미리 예약하지 못해서 못 갔던 포크 앤 프레즐 식당에 드디어 가게 되었다. 평일저녁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진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리가 꽉 채워졌다. 음악을 직접 연주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아기가 그분들을 정면으로 보고 앉아 즐겁게 머리를 흔들며 음악을 듣는 바람에 모두가 아기를 귀여워해 주셨다.
여기서도 독일을 시켰다.. 독일음식 좋아하네 나.. 슈바인학센 6990ft (한화 약 25,000원), 남편은 간단하게 먹고 싶다며 감자스튜를 시켰다. 3690ft (한화 약 13,000원). 학센은 겉바속촉으로 맛있었고 감자스튜는 엄청나게 느끼했다.
느끼해서 곁들여먹을 오이샐러드가 더 맛있었다는..!! 나는 토카이를 또 마실까 하다가 로제와인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도수가 센 느낌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명물 - 장미아이스크림
첫날 가이드가 이쪽에 오면서 장미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며 한 번쯤 사 먹어 볼만하다고 해서 우리도 하나만 사 먹어 보기로 했다. 사이즈를 선택하고 배스킨라빈스처럼 맛을 골라서 만드는 건데, 맛도 맛이지만 색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며 골랐다. 베스킨처럼 입가심할 거를 맨 밑에 두고 느끼한걸 먼저 먹는 작전 비슷하게 제일 어두운 색을 바깥으로 하고 밝은 색을 안에 배치할 생각으로 맛을 골랐다.
그런데 웬걸... 제일 바깥일 거라 생각한 어두운 색이 제일 가운데 꽃봉오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결국 악마의 아이스크림이 되어버린 우리의 장미아이스크림.ㅜㅜ
맛은 바질레몬, 로즈, 초콜릿 세 가지 맛으로 시켰고 1500ft (한화 약 5,500원)이었다. 남편의 맛표현에 따르면 바질레몬은 양재꽃시장 들어갔을 때 나는 향 맛, 로즈는 딸기요구르트, 초콜릿은 그냥 초콜릿맛. 그런데 엄청 진해서 목이 마른 초콜릿 맛이었다.
오늘 하루는 장기 여행만이 얻을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 여유 가득한 여행이었다. 소소한 행복이 가득했던 부다페스트에서의 6일 차 여행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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