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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nic

[서울나들이] 덕수궁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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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답답해!

설 연휴가 너무 긴 나머지(?) 마지막 날엔 더 이상 집 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 설 전후로 오미크론 유행이 점점 커지면서, 일일 확진자수가 1만 5천 명을 넘겼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서 식사하기는 좀 꺼려지는 상태.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모이기가 힘들다 보니, 처가 쪽 가족이나 우리 쪽 가족 모임도 다 집에서 했다. 음식을 뭘 많이 해서 먹진 않았다. 어머니들께서 간단한 요리를 한 두 가지 하셨고, 나머지는 구매해서 상차림을 했다. 다 같이 둘러앉아 식사도 하고, TV도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 봐야 집 안에만 있다 보니 서너 시간 보내다가 파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나와 아내 둘뿐이다.


평소 같으면 아직 퇴근도 안 했을 시간인데, 집 안에 있자니 시간이 너무 안 간다. 하루가 너무 길다. TV나 영화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내가 몸이 무거워서 밖을 다니기 힘들다 보니, 계속 집에 있게 되고, 집에 있으니 몸이 더 무거워지고. 이러다간 계속 뒹굴뒹굴만 하다가 연휴가 다 가겠다 싶었다. “연휴다!” 하면서 밖에 너무 돌아다니면 코로나 걸리기 십상이지만, 그렇다고 집에 틀어박혀 있자니 우울증이 올 것만 같다. 계속 멍- 하게 된다.

# 우리 어디 가? 음, 덕수궁!

연휴의 마지막 날인 수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또 누워있었다. 이러다간 안 될 것 같아서, 아내에게 “우리 씻고 나갈 거야!”라고 제안했다. 그 말에 “우리 어디 가?”라고 물어보는 아내. 별생각 없이 나는 “덕수궁!”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어딜 가려고 정하고 말한 건 아니었다. 그냥 일단 씻으면 기운이 좀 생기고, 그리고 밖에 나가면 어디든 발길 닿는 곳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씻기도 전에 목적지를 물어보기에, 그냥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를 얘기했을 뿐이다. 일단, 덕수궁이라는 말에 아내는 씻으러 들어갔고, 나도 얼른 준비해서 씻고 나와 나갈 채비를 했다.


집 앞에서 덕수궁으로 가는 버스가 한 번에 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있어서, 빨리 오는 걸로 골라 탔다. 마침 자리가 있어서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잠들었다. 계속 집에 있다 보니 체력이 약해졌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찬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 추위를 이겨내고 따뜻한 버스에 타니, 몸이 사르르 녹으면서 잠이 왔다. 덕수궁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고 한다. 한 참 자다가 눈을 뜨니 종로를 지나고 있었다. 곧 내려야 해서 졸린 눈을 이기고 정신을 차렸다.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덕수궁까지는 5분 정도 걸어야 했다.

# 날씨 진짜 맑다!

하늘이 엄청 파랬다. 날이 춥다 보니 북쪽의 고기압이 내려왔나 보다. (?) 미세먼지도 없고 청정 그 자체였다. 근데 너무 추웠다. 후문 쪽에서 내렸는데, 후문은 직원 전용 출입구라고 한다. 입장은 정문으로만 가능했다. 돌아가야 하는 참에, 과자를 일단 다 먹고 가기로 했다. 아내는 요즘 갑자칩을 달고 산다. 원래는 포카칩을 먹는데, 어째 덕수궁 앞의 편의점에는 포카칩이 없었다. 짭조름한 맛이 덜하지만, 포테토칩으로 달랬다. 담백하니 이것도 나름 괜찮았다. 감자칩 먹으며 좋아하는 아내를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 찍는 동안 나는 한두 번 먹었을까, 어느새 감자칩이 동이 났다. 포카칩 귀신이 그새 다 먹어버렸다. 그래도 마지막 조각은 나에게 양보해줬다.

요즘 감자칩을 달고 사는 아내. 포카칩 귀신. 하지만 이 날은 포테토칩으로 대신했다.

# 연탄, 꽃, 예술

돌담길을 따라 정문으로 가는 길에, 예쁜 꽃이 하나 있었다. 길을 따라 아무것도 없었는데, 저 꽃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연탄에 꽂힌 장미다. 조화 같진 않았다. 색깔이 불그스름 오묘했다. 옆에 있는 팻말엔 “뜨거울 때 꽃이 핀다 - Yeol”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설치 미술을 하는 이호열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안도현의 시 구절에서 나오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에서 차용한 듯하다. 알고 보니 굉장히 오래된 작품인 것 같다. 2018년도 기사도 찾을 수 있었고, 그 내용에는 2013년도에 처음 시작했다는 듯한 내용이 있었다. 생화이고, 꽃이 시들 때면 갈아주러 온다고 한다. 자주 찾다 보면 매번 다른 색깔의 꽃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날이 좀 풀리고 또 덕수궁을 찾게 되면, 꽃도 보러 와야겠다.

연탄에 심긴 장미. “뜨거울 때 꽃이 핀다 - Yeol”

# 덕수궁

꽃을 보고 정문으로 갔다. 매표소 앞에서 뭔가 할인받을 만한 게 없나 찾아보고 있었다. 마침 명절이니, 뭔가 고궁 무료입장 같은 게 있을까 싶어서다. 사실 입장료가 1000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없으면 뭐 그냥 내고 들어가는 거였다. 명절 무료입장이 안 쓰여있는 것 같아, 티켓을 끊으러 매표소로 다가갔다. 직원분이 아래 내용 읽어보고 해당되는 게 있으면 말해달라 했다. 국가유공자, 장애인, … “임산부”가 쓰여있었다. 아내와 나 둘 다 보자마자 “오! 임산부!!” 하고 외쳤다. 누가 보면, 임산부 찾기 놀이하는 줄 알겠다. 그러자 직원 분이 “배지 보여주세요”라고 했다. 가방에 달려있는 핑크 배지를 보여드리자, 임산부는 무료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럼 하나만 결제해달라고 하니, 동반 1인까지 무료라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돈 한 푼 안 내고 덕수궁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임산부 데리고 오는 남편도 착하다고 주는 상인 것 같다.

우대권. 덕수궁 입장을 무료로 했다! 운이 좋다.


예전에 석조전에서 하는 미술 전시를 보러 한 번 왔었는데, 덕수궁 자체를 구경하러 온 건 처음이다. 경복궁이나 창경궁과 달리 덕수궁은 석조 건물이 함께 있고, 그다지 넓지 않아서 예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적당히 한적하고, 적당히 예스럽고, 적당히 현대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곳이다. 의자에 앉아 햇빛 샤워를 했다. 춥지만 햇빛을 맞으며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으니 점점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내가 의자 밑의 모레를 뒤적거리더니 100원짜리 동전도 하나 발견했다. 오늘은 럭키 데이인가? 사람이 없을 때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신선한 공기로 깊은숨을 쉬었다. 집 안에만 있으며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얼른 날이 풀려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따뜻한 햇볕 아래서 멍 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햇빛 샤워

 

파란하늘 배경의 덕수궁 중화전. 아주 깨-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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