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자신감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임신해도 입덧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주변에 임심 했다던 친한 사람들 중에 입덧했다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그런가.. 입덧은 그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5주 차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만 해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굳이 입덧이라고 하면 그냥 식욕이 아예 없는 것
평소에 달고 다니던 과자가 안 당긴다는 점 그뿐이었다.
근데 6주 차가 되니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면 극도의 울렁거림으로
내 올해 버킷리스트인 '아침 먹고 다니기'를 못하게 만들었다.
그저 귤이나 딸기같이 시원하고 새콤한 것만 겨우 먹을 수 있어서 입덧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계속되는 울렁거림, 밥 먹은 지 3시간쯤 지나면 또다시 찾아오는 허기짐, 허기지면 또 울렁거리고
그래서 밥먹으면 체한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속도 울렁거린다.
평소에 디퓨저로 우리 집을 꽉꽉 채워놨던 그 향기도 맡기 싫고
평소에 좋아하던 향기로운 핸드크림 냄새도, 다른 사람들의 향수 냄새, 화장품 냄새도, 심지어 내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었던 내 립스틱 냄새까지 그렇게 역하게 다가올 수는 없었다..
어쩜 이렇게 일주일 사이에 내 후각이 극도로 발달하는지..
원래도 후각이 좀 예민해서 화장실 갈 때는 아무리 깨끗한 화장실이라도 코가 그냥 막혀(?)지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
아무튼 지하철에서도 화장품 냄새나는 여성분들이 내 앞에 서면 속으로는 '제발 다른 곳으로 가주세요...' 하고 싶어질 정도다.
아무튼 그 입덧 상태가 목요일에는 거의 최상의 상태로 다가왔다.
점심으로 포케를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토할 것 같다.
그 뒤로 계속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일하다가 멈추고, 바람 쐬러 갔다 왔다.
그렇게 겨우 근무시간을 채우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내 입안에서 나는 양파 냄새가 역해서 아예 그냥 코를 막고 갔다.
혼자 이러고 있는 꼴을 생각하니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책이다 싶긴 하다.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 입덧이 심바가 잘 있다는 신호라면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월요일에 심장소리와 함께 훌쩍 자라 있는 모습만 보여다오. 심바야
그리고 저녁엔 엄마가 생일밥 미리 차려준다고 부르길래 월요일까지 기다렸다가 말하려던 거
그냥 오늘 말하자 싶어서 초음파 사진을 챙겨갔다.
밥을 다 먹고,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엄마 아빠한테 할아버지 할머니 된다고 말했더니 너무 놀라면서 다들 눈물을 찔끔했다.
엄마는 우리한테는 전혀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고, 우리는 아직 제일 마지막으로 결혼하기도 했고 제일 어리기도 하고
이제 막 집을 산 터라 대출금 갚는데 열심히 건강 챙겨가며 하라는 기도만 했다고 했다.
언니가 아기 갖는 것으로 너무 고생해서, 그리고 오빠도 먼저 결혼해서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기에 그 둘을 위해서만 자녀에 대한 기도를 했지 우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울먹였다.
아빠는 올해 제일 큰 선물이라며 잘했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도 괜히 옆에서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지난주에 어머님이 눈물 날 것 같다고 했을 때도 눈물 날 것 같은 거 꾹 참았는데ㅋㅋ
아무튼 이제 큰 숙제는 덜었다.
심바만 잘 자라면 된다.
엄마의 튼튼한 기운을 받아 나도 그렇게 튼튼하게 아가 낳을 수 있게 되길 믿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2022.1.20
민쀼의 베지채블 밀려서 아침에 쓴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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