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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rearing

Hello (New) World, D+2 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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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만 하더라도 난 그냥 자고 있었다. 웃긴 꿈을 꾸면서 키득키득 잠에서 깼다. 그런데, 그 이후로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개발자로서 실제 많이 쓰진 않고, 대표적인 밈 같은 것엔 “Hello World”가 있다. 내가 “Hello World” 한 기억은 없지만, 서류상 기록이 남은 건 30여 년이 되었다. 그런데 어제는 진짜 “Hello World”를 했다. 그것도 Hello “New” World. 새벽에 일어나서 아내를 따라 거실로 나간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임신테스트기가 아내 손에 있었고, 거기엔 말로만 듣던 두 줄이 있었다. 네? 아 물론 지난달에 나의 의지에 따라, 우리의 의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그리고 아주 치밀하게 준비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내가 얼마 전에 곧 생리할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래, 어떻게 그게 그렇게 금방 되겠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오늘은 생리할 것 같다”라고 말해줬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그렇게 새벽 4시부터 뜬 눈으로 지새우고, 7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깐 잠들었다가 8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곤 의사 선생님이 배정되었고, 진료실에 들어갔고, 초음파를 보았고, 결과를 들었다. 5mm의 아기집과 난황이 보인다고 했다. 아직 심장이 자라지는 않아서 소리를 들을 순 없고, 2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엽산이랑 비타민 챙겨 먹고 있냐고 물으셨고, 아니라 하니 처방해주셨다. 코로나 접종은 했느냐 물으셨고, 부스터 다음 주에 맞으려 했다 하니 일단 13주 차가 될 때까진 미루라고 하셨다. 임신했다는 결과를 들으러 간 거긴 하지만, 막상 듣고 나니 머리가 멈췄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묻지도 않은 것을 먼저 다 말씀해 주셨다. 병원을 나오며 임신확인서를 발급받고, 행복카드를 만들고, 태아 보험을 가입하고. 그러고 나니 11시였다. 배가 고팠다.

아기가 생기고 나면 엄청 기쁘고, 엄청 감정이 북받쳐올라 울음이 나고 할 것 같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이렇게 만나니 현실감이 없었다. 아기가 생긴 게 맞나? 우리가 부모가 된 게 맞나? 아내의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13주 차까지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운동이나 충격 뭐 이런 것도 조심하고. 아주 중요한 중추 신경이나 심장 등이 만들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영양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아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백운대 등산하고, 커피 마시고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된다.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갑자기 아빠가 됐다. 아기 가져야지 가져야지 생각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어서 갑자기 너무도 불안해졌다.

어제 병원에 다녀온 뒤로는 계속 아기 얘기만 한 것 같다. 잘 키울 수 있을지, 태명은 뭘로 해야 하는지, 뭘 먹고 뭘 먹지 말아야 하는지. 배가 불러오고 출산을 하게 되면, 그 이후에 양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부나 회사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건 뭐가 있는지. 미리 준비하고 구입해놔야 하는 건 뭐가 있는지. 생각나는 대로 찾아보고는 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도 많다. 그래서 일단 임신 출산 준비 앱을 깔았다. “베이비 빌리”, “열달후에”. 기존에 쓰던 봄 캘린더에서도 출산 모드 같은 게 있긴 했지만, 정보가 좀 부족한 면이 있어서 알아보았다. 다른 앱도 있었지만, 디자인이나 콘텐츠 면에서 부족함이 많아서 일단 저 두 개를 깔아 보았다. 저 두 앱은 임신 기록을 하는 다이어리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하는 사람들끼리의 대화방이 있어서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기능들이 있다.

누구보다 제일 불안한 사람은 아마 아내일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잘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쉬다 보면 잠깐잠깐 멍 때리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얼굴에 티가 나나보다. 아내가 자꾸 날 보고 걱정하는 표정이라고 놀린다. 그런데,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가가 생긴 것이 한없이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만큼 걱정도 많이 생긴다. 일단 지금 당장만 생각하자고 말하고는 있는데, 그게 우리 둘 다 잘 안 된다. 뭐 그래도 이제 겨우 이틀 차니까. 금방 현실감 생기고, 금방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아기가 태어나는 날을 기대하며 준비할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나는 건 열 달로만 알고 있었는데, 40주로 계산하는 듯했다. 그래서 예정일이 당장 9월 9일이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디데이를 설정해 두었다. 우리 부부가 쓰는 비트윈 앱 메인에 날짜를 띄워놨다. 이제 243일 남았다. 이렇게 보니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우 8개월 남았다. 오늘은 “Hello (New) World” 지만, 8개월 후는 “Hello (Whole New) World” 가 될 것 같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쓰다가 50개쯤에서 막혔는데, 아기가 생긴 걸 알고 나서 20개를 단숨에 더했다. 처음 세웠던 버킷리스트가 많이 바뀔 것 같지만, 그건 기분 좋은 변화니까. 이제 정신 차리고 아가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겠다.

Hello, baby. Come!

산부인과에 다녀와서. 이게 다 진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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