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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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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는 글 주의
2022-09-09에 쓴 글

 

조리원 앞을 서성이는 나

 

열흘쯤 전 갑자기 아빠가 되었다. 물론 아기가 없다가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10개월 동안 본인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으니 갑자기는 아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초음파로만 볼 수 있는) 아기 심바가 아니라,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갓난아기 이솜이는 꽤 다르다.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뱃속에 들어 있는 것이 정말 사람은 맞는 건지 싶었던 10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보호자를 찾기에 분만실에 들어갔을 때, 타올로 쓱 한 번 닦고 누워있는, 엄청 작은 이솜이가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이솜이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제 배고파하면 젖병이라도 물릴 수 있다. 울면 안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다. 기저귀도 갈아줄 수 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그와 동시에 내가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아직 세상에 익숙지 않은 아기를 위해 당분간은 많이 조심해야 한다. 위생도 잘 관리해야 하고, 온습도도 적당하게 잘 유지해주어야 한다.

 

아직은 본인이 세상으로 나왔는지도 잘 모를 때라 자는 시간이 많다. 자다 먹고 자다 먹으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신생아실에 있었고 조리원으로 간 뒤로는 남편은 아예 건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가까이서 마주한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하다.) 먹고 트림하고 트림하고 자고, 그리고 또 서너 시간이 지나고 또 먹고 트림하고 자고. 한 달쯤 되어야 수유 텀이 4-5시간으로 늘어난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는 밤낮 할 것 없이 새벽에도 먹여야 한다. 다음 주 아내가 조리원 퇴소를 하고 집에 오면, 5일간 아내와 함께 아기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의견 조율을 해야겠다.

 

얼마 전 동생이 칼럼을 하나 보내왔다. 『그렇게 '진짜' 아버지가 된다』라는 제목의 한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글이다. 동명의 영화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해야 하는 역할을 말한다. 아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인가,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역할인가. 두 아버지인 료타와 유다이의 의견이 충돌한다. 나도 평상시에는 아버지를 떠나 가족이라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가 나오고 돈 들어가는 곳이 점점 많아지니 료타와 같이 경제력을 더 생각하게 된다.

 

힘들게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아기나 힘들게 아기를 품어내고 회복하고 있는 아내에게나,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좋은 것을 해주려고 하다 보면, 아무래도 내가 일을 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몇 년 뒤, 몇십 년 뒤에 다시 돌아올 결과를 생각하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사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도 아이들은 잘 자라고, 형편이 더 낫다고 해서 아이들이 무조건 잘 자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이 든다 해서 쉽게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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