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31 제왕절개 3일차
3일차가 되던 날 간호사분이 새벽 5시에 혈압을 재러 오시는 바람에 나는 그때부터 잠이 깼다.
남편은 꿀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깬게 아까워 운동을 하자 싶어 혼자 천천히 일어나 밖에 나갔다.
어제 그제 하루종일 시원하게 비가 온 뒤 그친 날이라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다.
매번 복도만 거닐다가 병원내에 하늘 정원이 있어 거기서 운동하려고 올라갔다.
처음에 하늘정원에 갈 때 좀 버벅댔었다.
내 입원실은 7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에 10층 버튼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9층에서 연결되어있나보다 싶어서 일단 9층으로 갔더니 거기 직원분이 어디가시려고 하냐고 묻길래 10층 간다 했더니 맨 왼쪽 엘리베이터 한대만 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타고 올라가서 5바퀴 정도 빙글빙글 돌고 내려갔더니 남편이 비몽사몽간에 엘리베이터로 나를 찾으러왔다.
간호사분이 항생제 투약하려고 날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곧장가서 선 채로 맞았다.
모든 수액, 주사 등은 왼쪽에 수술 때부터 꽂혀있었던 그 바늘구멍을 통해서 맞았었는데 어쩐지 이틀 째 되던 날 저녁에 항생제를 맞는데 갑자기 시큼찌릿했다. 내가 그냥 서서 맞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금방 가만히 있으니 안정이 되었다.
근데 3일차 아침에도 항생제 맞는게 좀 따끔하긴 했다. 원래는 아무 느낌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남편한테 머리 좀 감겨달라고해서 머리를 감고 쉬고 있었는데 바늘구멍에서 피가 역류하고 있길래
피좀 빼달라고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갔더니 바늘을 아예 빼버리자고 하셨다.
다른 간호사님은 오늘 항생제가 한번 더 남아있으니 잠시 두자고 하셨다가 내가 살짝 아프다고 하니까 내 팔뚝을 보더니
팔이 부어있어서 계속 바늘을 끼고 있으면 안된다고 즉시 빼주셨다. 항생제가 유달리 아프게 들어갔던 이유가 있었나보다.
그러면서 이미 무통주사도 끝나있다고 하셨다.
무통주사가 끝나있었구나.. 난 계속 무통주사의 힘으로 버티고있었는데 주사를 빼고나면 괜히 엄청 아파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았다.
바늘을 빼고 방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그럴거면 진작에 뺄 걸 그랬다며... 머리 감을 때 수액들 때문에 엄청 번거로웠었는데 타이밍을 애석해 했다.
아침 8시에 제공되는 아침은 전날 저녁과는 다른 건더기가 있는 죽이었다.
한입 먹으니 속이 쏴악 풀렸다.
죽을 먹고 조금 쉬다보니 수유콜이 왔다.
첫 모유수유다!
유방을 흐르는 물에 씻고, 머리 묶고 수유실로 오라고 했다.
두근두근, 저 창문 너머로 보기만 했던 쪼꼬미 아가를 내가 직접 만지고 쭈쭈를 줄 수 있다니 너무 설렜다.
수유실에 들어가니 신생아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핸드폰을 알콜스왑으로 소독하고, 손을 깨끗하게 씻고 아기베개와 수유쿠션을 착용하고 다리를 받침대 위에 올리고
찌찌를 열어두니 아기를 데리고 오셨다.
아기가 쭈쭈 먹기 편한 자세를 잡아주시더니 왼쪽 10분, 오른쪽 10분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모유 수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아기가 처음 태어나서 2일동안은 휴식기라 한번에 20~40ml정도만 먹고 계속 잠을 잔다.
엄마의 유방,유두 근처에서는 양수냄새가 나서 아가가 코로 그 냄새를 맡고 안정감을 얻는다.
아가가 처음 젖을 빨 때는 젖이 안 나올 수 있고 계속 빨아줘야 젖이 돈다.
아기가 빠는 힘이 생각보다 엄청 세서 너무 아프면 아가가 아무리 잘 먹는다고 해도 참지말고 바로 빼주어야 유두에 상처가 안 난다. 유두에 상처나면 수유를 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젖몸살은 모든 산모들에게 다 발현 되는 것은 아니고 치밀유방이거나 모유량이 많은 산모에게 나타나는데
젖몸살이 생겼을 경우, 꼭 유축을 먼저하고 마사지를 해준 후 양배추의 파란잎을 깨끗히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유두 부분을 제외하고 가슴에 1시간 동안 얹어 열을 식힌다.
보통 유축이나 수유는 하루에 8~12회 가량 한다.
그렇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는 유두보호기가 애매하게 필요한 길이라 M사이즈로 구매할 것을 권해주셨다.
그래서 병원 카페에서 바로 구매를 했다.
그렇게 나의 첫 모유수유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정보의 세상속에 제대로 됐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끝났다.
아이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작았고 빠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 쪼그마난게 찹찹찹 먹겠다고 열심히 빠는 모습을 보니 이래서 모유수유를 하면 엄마와 아가의 애착형성이 자연스럽게 된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아침 8시 30쯤에 첫 모유수유를 마치고, 그 뒤에 밥 먹고 거의 30분-1시간 뒤쯤에 바로 콜이 왔다.
그래서 계속 내려가서 먹이는데 한 세번째 콜이었나?
아기를 먹이는데 반대편 쭈쭈에서 계속 모유가 나와서 아가 싸개를 다 적셨다.
나는 처음에 아가 싸개가 노랗게 되어있길래 왜 우리애기 싸개는 이렇게 지저분한 걸로 싸줬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내 젖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엄마 모유 이렇게 잘 나오면 지금 한번 유축해보자고 하셨다.
유축할 수 있게 셋팅해주셨길래 앉아서 하고있는데 왼쪽부터 한참 하고나니 안나오길래 뚝뚝 흐르고 있는 오른쪽 먼저 했더니 쭉쭉 나왔다. 그리고나서 왼쪽했더니 거기도 쭉쭉 나왔고 각각 5분씩해서 첫 유축, 첫 초유는 40ml가 나왔다.
선생님한테 유축한 젖병을 내미니 깜짝 놀라시면서 초유를 40ml나 뽑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뭐 잘 못한 줄 알고 ㅠㅠ 머쓱해했는데 나중에 보니 첫 초유는 대부분 엄청 조금만 나온는 것 같다.
졸지에 모유왕이 되었다. ㅋㅋ
병원에 있는 동안 계속 속옷을 안입고 다녔는데 모유가 그렇게 나오기 시작하니까 옷에 막 묻어 흘러내려서
그냥 면패드 하나를 대충 속옷 안에 올려놓고 잠잘때는 속옷을 살짝 풀러놓고 잤다.
2022.9.1 제왕절개 4일차
그리고 그날 새벽4시 30에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위아래로 축축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어나봤더니 아래는 오로, 위에는 내 초유가 수유패드, 속옷을 다 적시고 옷도 축축하게 적셨다.
난 그 새벽에 혼자 불편한 몸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결 해야할까 싶어 한 20분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남편을 깨우려다가 밤새 잠을 못잔 것 같아서 깨우기가 미안해 혼자 어떻게 할까 생각중인 와중에 새벽 5시쯤 마침 간호사님이 혈압을 재러 와주셨다. 내가 옷을 잡고 앉아있으니 새 옷을 갖다주었다.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일단 화장실에서 수건을 적셔서 찐득한 초유를 다 닦아내고 내친김에 팬티도 갈아입자 싶어서 반샤워를 했다.
그래서 결국 또 잠이 홀라당 다 깼고, 새벽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입원한 내내 비가 왔는데, 4일차 아침에는 비가 그친 하늘이 어느새 가을 하늘로 변해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아가를 낳으러 왔는데 갑자기 달이 바뀌고 계절도 바뀌어 가는 듯했다.
너무 더울 때 낳으면 더 힘들다고 하는데 날씨가 딱 선선하니 좋아져서 여러모로 회복에 좋겠구나~ 타이밍이 좋구나 생각했다.
운동하고 돌아오니 남편이 깨어있었고, 새벽에 나에게 무슨 난리가 있었는지 말해주었다.
그리고 밥먹고 또 좀 쉬고 있으니 오늘의 수유콜이 왔고,
전날 저녁에 유축을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망설이다 안한 탓에 새벽에 그난리를 겪게 되어 오늘은 유축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나를 봐주신 선생님은 처음 내 유방상태를 점검해주시러 오셨던 분인데, 전에 설명해주셨던 선생님과 달리 좀 더 자세하고 다르게 설명해주셨다.
전 선생님은 아가가 모유를 먹을 때, 접혀있던 귀를 펴주라고 하셨는데
이 선생님께서는 아가가 모유를 먹다 잠들면 귀나 어깨, 발을 부드럽게 만져주어 깨우면서 먹이라고 알려주셨다.
유축기 사용하는 방법도 상세하게 알려주시고.. 아무튼 선생님마다 너무 스타일이 다르고 설명하는 것도 달랐다.
둘째날 유축량은 30ml, 지금 생각하면 새벽에 흘려보낸 내 초유들.. 너무 아깝다. 우리 이솜이 더 먹일 수 있었는데..ㅠㅠ
몰랐으니.. 다음에는 무조건 유축을 잘 하리라!!
식사는 역시나 미역국이 나왔고, 반찬들도 다양하고 간도 딱 맞았다.
저염이라 했으나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아니면 남이 해준 밥이라 그런가.. 너무 맛있었다.
근데 원래 하루에 두끼만 먹다가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다 챙겨먹는것에 비해 그만큼 움직임은 없다보니 저녁에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먹으라고 했다.
이제 4일차가 되니 다음 날 퇴원을 해야해서, 퇴원 교육과 병원만족도 조사를 했다.
퇴원 교육을 할 때, 교육자분이 자연분만을 '정상분만' 이라고 했다.
안그래도 아이가 역아라 부득이하게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속상하게 들렸다.
제왕절개하고 회복이 이정도라면, 자연분만 했었다면 회복이 더욱 빨랐을거라 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출산할 때는 말도 못하게 아프겠지만 그 또한 내가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꼭 경험해보고 싶었던 부분이었기에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 자연분만이 '정상분만'이라는 말은 두번 죽이는(?)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왕절개 산모들은 몇 달이고 계속 고생한다구욧...!! 좀 더 세심하게 헤아려주길 바라는 마음에 만족도 조사지에 썼다.
퇴원 선물로는 새파란 기저귀가방과 입원시 아가를 먹였던 분유(남양 아이엠마더), 아기수첩, 각종 자료지, 인견이불을 주었다. 기저귀가방 컬러를 차라리 그냥 아이보리로 했으면 좀 더 유용하게 썼을 것 같은데 그 점이 좀 아쉽다.
분유는 혹시 모유가 안나온다면 무슨 분유로 할 까 고민했었는데 병원에서부터 먹였다고하니 고민은 덜었다.
그렇지만 나는 모유가 잘 나오니 아마 먹일 일이 적지 않을까 싶다.
또 수유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를 먹이고 유축을 했다. 또 30ml가량 나왔다. 잘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우리딸
2022.9.2 제왕절개 5일차
아침부터는 퇴원날이라 분주했다.
아침을 먹고 마지막 모유수유를 하고 검진까지 마치고나니 퇴원 수속을 했다.
입원비, 수술관련 약값 등등 정산비용이 약 140만원 가량 일시불로 슝-나갔다. 바우처는 40만원가량 남아있었고 나머지 금액으로 정산을 했다.
아가 하나를 낳기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을 들이다니.. 그래도 그만큼 밥도 잘 먹었고 마사지나 검진 등 산후관리도 잘 받았으니 4박 5일 식사제공되는 호텔값으로 생각하면 뭐 그럭저럭 잘 지냈다고 생각해본다.
모든 정산, 절차를 마치고 드디어 아가를 데리러 가는 길!!
신생아실로 가서 아이 황달검사(수치 8로 정상범위 내라고 한다.) 설소대(조금 짧기는 한데 문제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선천성대사증후군(정상) 등등 검사 내용을 알려주면서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갈아주시는데 왠일인지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가를 처음 본 날은 마취상태에서 본 거라 눈물같은 건 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게 왠 주책이람? ㅎㅎ
이 조그마하고 꼬물거리는 아이가 내 아이라는 감격때문이었을까?
너무 눈물날 상황이 아니었기에 황급히 눈을 여러번 깜빡거려서 눈물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편이 겉싸개를 가지고 와서 아이를 건네받았을 때, 이제 2주동안 못 볼 남편을 위해 아이를 안고가게 했다.
귀여운 우리 남편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잔뜩 긴장한 것 같았다.
우리 남편이 애기 아빠라니! 그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조리원으로 픽업해주는 차량을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있었다.
조리원 차가 우리를 픽업해서 조리원까지 도착하는 그 5분의 시간,
부녀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제 곧 조리원으로 입소할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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