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8 매우 날씨가 좋았던, 제왕절개 수술일을 5일 남겨두었던 일요일.
미루고 미루던 출산 가방을 슬슬 챙겼다.
그리고 몇 주간 아기 이름 두 가지 후보 중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날 나에게 남편이 딱 물었다
“여보는 이름 뭐로 하고싶어?” 난 흔한 이름보다는 차라리 한글 이름이
낫겠다 싶은 마음에,
“이솜, 진이 솜” 그래서 남편도 오케이, 이솜이 하자 하고 정해두었다. 그리고 우린 저녁 6시에 피자를 시켜먹었고
넷플릭스에서 ‘서울대작전’을 보면서 저녁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나는 38주차인 지난주 금요일까지 출근을 하고
8.29 월요일, 바로 오늘부터 출산휴가가 시작될 참이었다.
그래서 출휴가 시작되자마자 약속을 두 개나 잡아두었고,
남편이 출근을 한 동안에 아가 옷들 최종적으로 다 빨아두고 집 정리 좀 해야지 하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리고 밤 11시쯤이었나 잠에 들었다.
역시나 매일 그랬듯이 새벽 3시쯤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갔다 온 뒤,
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왔다.
왼쪽 어금니가 부어올랐는지 좀 아프길래 낼 치과를 예약은 안 했지만 그냥 가서 스케일링 좀 해달라고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으로 돌아 누웠는데,
갑자기 배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물이 줄줄줄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당장 화장실로 갔고, 변기에 앉자 쉬 싸듯이 줄줄줄 물이 나왔다. 그리고 닦는데 휴지에 분홍색 피가 섞여 묻어 나왔다. 자고 있는 남편에게,
“여보, 나 양수 터진 것 같아”
하니까 남편이 놀라서 바로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난 그때부터 멍해져서 우왕좌왕하다가
남편이 햇빛 병원 야간 상담실에 곧바로 전화해서 내 증상을 말하게 했다.
피가 나는 건 경부가 얇아져서 그럴 수 있다고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지켜보다가 계속 물처럼 새면 다시 연락 달라고 했었나…?! 혹시 모르니까 금식은
계속하라고 했다.
근데 전화를 끊고 나서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났다 ㅋㅋㅋ아무튼 당장 오라고는 안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원래 수술 날짜 전날에 싸려고 비워둔 몇몇 가지 짐들을 마저 챙기고, 다시 누워있었다.
그때 시간 새벽 3:38,
그리고 4:15 쯤에 다시 물처럼 나왔고,
이번에는 빨간 핏덩어리 1cm 정도가 같이 떨어져 나왔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전화를 해서,
30분에 한번, 1시간 30에 한번 이렇게 물이 흘렀고 이번에는 빨간 핏덩이도 같이 나왔다,
진통이 배 쪽으로는 없고 허리만 좀 아프다고 당장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좀 더 기다려도 되는 건지 물으니
간호사님은 애매한지, 물이 나오는 시간 간격이 좀 길다고 거의 연속적으로 왈칵왈칵 쏟아지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 주치의 원장님이 9시에 수술이셔서 그때 오면 다른 선생님한테 진료 보시고 응급 수술을 할 수도 있고,
양수가 아니면 그냥 다시 귀가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당장 가진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원장님한테 수술받긴 싫어서 아침 9:30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 뒤로 나는 머리는 미리 감아두었고 잠은 못 자고 계속 심바가 잘 있는 건지 배에 손을 대보고 눈만 감고 있었다.
5:30, 7:30 즈음 또 물이 흘러나와서 계속 흘려보냈다.
점점 뭔가 배 사이즈도 작아진 것 같고 심바의 태동이 없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렸다. 아침 8:30
설거지를 하고 짐 정리 마무리를 하고 나니 9시가 되어 남편이 짐을 실으러 갔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9:30..!!
우리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비가 꽤 왔다.
차가 엄청 막혀서 도착하니 10:15쯤 되었다.
접수처에 양수가 터진 것 같다고 하니 부랴부랴 안내를 해주었고
체온, 체중, 혈압을 재자마자 담당 간호사가 나를 바로 데리러 왔다.
의사 선생님이 양수 터진 게 맞고 아가 심장소리는 정상이니 바로 오늘 수술하자고 하시면서 코로나 검사를 해주셨다.
응급수술이 되어버려서 코로나 검사 비용은 남편과 나 각각 3만 원씩 총 6만 원이 발생되었다..
어제 도봉구청에 있는 PCR 검사소 근처를 왔다 갔다 했었는데, 거기서 할 걸.... 한 치 앞도 모른다 린생..
그리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려서 5층 분만실로 이동했고, 남편은 밖에 있었고 나만 데리고 가시려는데 복대가 있냐고 물으셨다. (이때가 11시)
복대를 오늘 저녁에 당근으로 나눔 받으려고 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남편이 부랴부랴 병원 앞 약국에서 복대 (4천원)를 구매해 왔다. 복대를 건네받고 몇 가지 수술 전 확인 사항에 관한 서류를 작성 한 뒤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진통실'이라고 써져있는 곳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고, 압박스타킹은 간호사분이 신겨주셨다.
그리고 배에 뭔가를 부착하더니 아가 심장소리가 들렸다.
혈압과 체온을 다시 재고 좀 누워있다가 바로 수술실로 이동했다.
잠을 못 자서 상당히 멍- 한 상태로 안내해주시는 대로 따라 들어간 수술방은 드라마에서 보는 초록색의.. 차갑고 메탈릭 한 느낌이 아닌 아담하고 생각보다 따뜻한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제왕절개 하신 분들 경험담이 차갑다 어쩌다 하길래 난 수술대가 차가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냥 편안한 침대에 누우니, 양쪽에서 내 팔을 잡아 주사 바늘 좀 꽂는다고 하셨다.
큰 바늘이라 아플 거라고 하셔서 엄청 쫄았는데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다.
그다음은 두려웠던 것 중 하나인 소변줄!! 소변줄은 사촌언니가 끼고 뺄 때 너무 아프고 깜짝 놀랐다고 하길래 잔뜩 쫄면서 릴랙스하게 컨트롤했더니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는 “제모할게요” 하더니 째는 부분 쪽만 살짝 깎아내신 후 내 배를 소독했다.
소독하고 나니 소독약이 차가운데 그게 증발되면서 살짝 추웠다.
간호사들이 "갑자기 수술하게 돼서 당황하셨겠어요~", "소독약 때문에 추우시죠 ~", "이제 아픈 거 다 끝났어요" 하면서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그리고 파란 덮개가 씌워졌고 배를 째는 부분만 남겨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살짝 시계를 보니 11:27이었다.
정말로 일사불란하게 간호사들이 착착착 준비를 다 마친 후에 내 주치의 선생님께 콜 하니 선생님이 오셔서 또 늘 그랬던 것처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시고 웃는 얼굴로 안심시켜 주었다.
마취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제대혈 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하고 나니, "이제 재워드릴게요, 마취제 들어갈 때 뻐근할 수 있어요" 하셨다. 뭐 살짝 뻐근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러고 한 3초도 안돼서 잠든 것 같다.
그리고 눈 떴는데 옆에 남편이 와서 손을 잡아 주고 있었다.
근데 입에 뭘 해둔 건지 토할 것 같아서 갑자기 호흡곤란 온 것처럼 흥분했더니 남편이 간호사님을 불러서 내가 토할 것 같아 한다고 하니 입에 꽂아 둔 것을 뽑아주었다. 그리고 차차 내 호흡을 찾았지만 계속 눈은 감겼고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이제 깨야한대 ~" 이래서 눈을 떠보려고 노력했다. 조금씩 조금씩 눈을 뜨고 몇 시냐고 물으니
오후 1:30이라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구나..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ㅋㅋ
남편이 애기 사진 볼 거냐고 물었는데 지금은 그걸 볼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안 본다고 했다.
갑자기 또 간호사 분이 남편을 밖으로 불러내고 나서, 나한테 들이닥쳐서 피 좀 뺄게요 하고선
질 쪽에서 뭔가를 잡아 빼는 듯하면서 배를 꾹- 눌렀다.
"잘 참으시네요~ " 하길래.. 난 윽- 하며 한마디도 못했다.. ㅋㅋ 갑자기 습격해놓고 잘 참으신다니..ㅋㅋㅋ
그래도 비몽사몽간에 해서 다행이었다. 정신 말짱했으면 너무 아팠을 듯...
그리곤 "이따가 아기 데려 올게요 ~ " 하셨다.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이 오셔서 고생 많았다고 아기 건강하게 잘 나왔다고 아기가 아직 호흡하기 어려워서 코에 뭐 끼고 있으면 조금 시간 걸릴 거고 아니면 금방 내려올 거라고 하셨다.
다행이 아기는 금방 내려왔다. 내 옆에 도착했는데,
나는 처음에 보고 읭? 이거 아기 모형 아니야? 했다. 너무 꼬물꼬물하고 피부도 살짝 투명한 듯하고 드라마에서 아기 모형으로 많이 쓰이는 그런 것 같았다.
간호사님이 싸개를 펼쳐서 손가락 발가락 다섯 개씩 있는지 보여주시고 확인사항들을 남편한테 줄줄 읊었다.
그 사이 나는 비몽사몽간에 계속 아기를 봤다.
아니.. 왜 이렇게 뽀얘? 싶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 다 엄청 빨간 거 아닌가 싶었는데 울애기는 넘 뽀얗다. ㅋㅋ
너무 이쁘네..ㅋㅋ 도치맘이 이렇게 되는가...? ㅋㅋ
간호사님이 애기 한번 안아보실래요? 하더니 산모님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셔서 안겨드린다며 나에게 안겨주었다.
볼을 만지고 싶었는데 볼은 못 만지게 하셨다 ㅋㅋ
남편도 한번 안아보고 다시 데려가셨다. 빠빠이 울애기 또보쟈
2시간 좀 넘게 회복실에서의 절차는 마무리를 하고 병실로 이동했다. 누워서 가니까 좋구먼 ㅋㅋ
방에 도착해서 조금 쉬다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아가가 태어났음을 알려주었다.
아직 가스가 나오질 않아서 물도 마시지는 못하고 누워있었다.
계속 간호사들이 들어와서 소변 체크하고 항생제 같은 거 투여해주고 케어해주었다. 주치의 선생님, 당직 원장님, 대표원장님 등 돌아가면서 회진을 도셨고 나는 잘 있다고 대답했다.
남편이 저녁에 다시 이솜이를 만나러 가서 사진을 찍어왔는데
아까 같은 뽀샤시한 느낌이 아니라 갑자기 못난이 똥돼지가 되어있어서 잉? 우리 아기 맞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 보면 안 그런데 조명이 역광이라 애기가 시커멓게 나왔다고 한다 ㅋㅋㅋ
아무튼 아직은 못생겼지만, 또 너무 나라서 사랑스럽다. 우리 못난이 ㅋㅋㅋ
겸댕 겸댕이 이뻐지자!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그 긴긴 10달의 여정을 마치고 부모가 되었다.
"안녕? 반가워 이솜아, 우리 잘해 보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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