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등산을 다녀온 뒤로, 추워졌다는 핑계로 너무 오랫동안 산을 안 올랐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12월 초부터 등산 가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주말마다 한파? 영하 12도, 16도를 넘나들었다. 평일에는 영하 6도 수준인데 말이다. 날씨가 참 요상도 하시지.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도 못 가고 그냥 집에서 디즈니 플러스나 주구장창 봤었다.
하지만, 이번 토요일은 마침 새해 1월 1일! 그래서 똑같이 영하 14도로 너무 춥겠지만, 꼭 산을 가기로 했다. 춥다는 핑계보다는 새해 첫 일출을 보러 가는 의미가 더 컸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 7시 48분 일출이라 하니, 한 10-20분 전에 정상에 도착한다 하면, 6시 반에는 오르기 시작해야 했다. (도선사 주차장이 있는 백운대 탐방지원센터 기준)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이고, 간단하게 씻고 어젯밤에 챙겨둔 옷을 입었다. 조금 늑장을 부리다 6시에 나왔는데, 공휴일이어서 그런지 새벽에 다니는 택시가 별로 없었다. 카카오 택시를 부르니 다행히 근처에서 바로 와서 얼른 잡아타고 탐방지원센터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 발생!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했는데, 입산 통제 중이었다. 새해라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깜깜한 길을 올라가는 게 우려스러웠는지, 1월 1-2일 이틀간만 아침 7시부터 입산할 수 있도록 통제 중이었다. 그때부터 오르면 금방 하늘이 밝아지긴 할 테지만,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엔 좀 빠듯한 시간이다. 실제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좀 걸릴걸 예상하고 일찍부터 나왔는데, 거의 한 시간 가량을 추운 데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게 못마땅하긴 했나 보다.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니 어쩔 순 없지.
7시가 되어 사람들이 우르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선두 그룹에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조금 가다 보니 사람들이랑 좀 멀어졌다. 엄청 빨리 올라가는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고, 천천히 즐기면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뒤로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의 페이스대로 올라갔다. 너무 집에 누워만 있다 보니, 몸이 좀 무거워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일출 보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갔다.
정상을 10여분 남겨두고 있을 때쯤 해가 뜨기 시작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일출을 먼저 구경했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이만큼 올라온 산 위에서 올해의 일출을 본다는 게 뿌듯했다. 마침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더 장관이었다. 소원을 빌진 않았는데, (지금 빌어야겠다) 올해 우리 가정에 좋은 일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5분 정도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한 뒤, 마저 정상을 향했다. 정상엔 사람이 별로 많진 않았다. 추석쯤에 올라왔을 때가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날씨가 추운 탓이 좀 큰 것 같다. 아니면 올라오던 중간에 해가 뜨자 사람들은 그것만 보고 다시 내려간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건 좋았다. 태극기 아래에 사람들이 보여 있는 곳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았는데, 태극기가 서있는 곳은 엄청 세게 불었다. 바람이 부니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추웠다. 이미 해가 뜬 뒤라 사진 찍기는 좋았던 것 같다.
사진을 찍고 내려와서 해를 좀 구경하다가, 수프를 타 먹었다. 지난번까지는 항상 컵라면을 들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너무 추워서 컵라면도 못 먹을 것 같아서 수프를 시도해보았다. 뜨거운 물에 가루를 타서 15초만 섞어주면 된다고 해서 샀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가서 조금 마시고, 가루 타고 뚜껑 닫고 흔들어서 먹었는데. 와! 너무 좋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렇게 맛있는 수프를 정상에서 먹으니, 몸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겨울 등산엔 수프가 제격!
정상에 고양이가 꽤 많았다. 처음 보이는 건 세 마리 정도였는데, 색깔도 다양하다. 갈흰, 검흰, 완전 검정 네로. 사람들이 다들 귀여워서 고양이 찍기 바빴다. 먹을 것도 좀 주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국립공원 직원분이 먹을 거 주지 말라고 제지시켰다. 고양이가 번식력이 좋아서, 산에서 뭐 먹고 번식하면 안 좋다나 뭐라나. 정확히 듣진 못해서 잘 모르겠다. 여하튼 핵심은 먹을 거 주지 말라. 조금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고양이들도 나왔는데, 정상에만 대여섯 마리 있나 보다.
수프 마시고 해 구경하고, 경치 구경하고 하다 보니 한 시간 정도 지난 것 같다. 지난번에 10월에 왔을 때만 해도 너무 추워서 1초도 못 버텼는데, 오늘은 완전 무장을 하고 와서인지 영하 12도인데도 그냥 그냥 그랬다. 비니 모자만 잘 쓰고 있으면 춥지 않다. 내려가기 전에 아쉬워서 사진을 한 장 또 찍었다. 날씨가 맑으니 어떤 사진을 찍어도 예쁘네. 그리고 모델도. 호호호
내려가는 길도 무리 없었다. 다만, 날씨가 춥다 보니 이슬이 언 것도 있고, 얼어 있는 계곡 물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면서 물이 묻은 게 다시 얼은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얼음이 군데군데 많아서 많이 미끄러졌다. 진짜 조심해야 된다. 앞에 가던 어떤 여성분은 제대로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게 안 다친 게 다행인 듯. 그 뒤로 우리도 계속 조심조심해서 내려갔다.
번외. 올라올 때 특수구조대 사무실 앞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모가 있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귀여워서 찍었다. 내려올 때는 이미 치우고 없었다. 2022년. 호기롭게 백운대 정상 찍고 출발했으니, 그만큼 성장하고 즐겁고 행복한 일 많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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