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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nic/hiking

8월 초, 한여름의 지리산 천왕봉 등반 (여름 등산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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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의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여 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동과 서, 영남과 호남이 서로 만나는 지리산은 단순히 크다, 깊다, 넓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 전에는 데이트로 아주아주 가끔 등산을 갔었는데, 결혼 후에는 여행지를 갈 때마다 가능하면 그 지역에 있는 산을 가려고 하는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다.

원래 물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하면 항상 바다를 생각했었는데 어느새부턴가 '여행'하면 이 생각났다.
등산은 바다에서 그냥 노는 것과는 달리 성취감이 생긴달까? 그래서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다 2021년도에 아예 하계휴가 계획으로 지리산 등산을 가기로 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지리산을 가고 싶다고 생각해왔었는데 갑자기 지리산으로 휴가를 가자!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먼저 그렇게 목적지를 잡고 언니네 쀼에게 "우리 올 휴가 때 지리산 갈 건데, 같이 갈래?" 했는데 바로 OK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언니네 쀼는 우리보다 등산을 그리 즐겨하진 않았다.
형부는 중학교 체육교사라 모든 운동에 능했지만, 언니는 다소 저질체력(?)인지라 아무래도 지리산 등산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텐데 그래도 같이 가기로 한 만큼 가기 전에 북한산에 연습 삼아 갔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해보면 우리 중에 지리산 유경험자는 언니뿐이었다. 예전에 일하는 곳에서 촬영차 지리산 노고단 쪽을 갔었는데 당시엔 등산화도 없이 그냥 운동화 신고 갔다고 했다. 그때 어렴풋이 들었던 언니 말이 "지리산 갈만해" 였던 것 같다.

우리는 그나마 등산을 좀 다녀서 내공이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하면서도 내가 정말 걱정했던 건 '한여름'이었다.
우리의 휴가는 8월 첫째 주, 휴가철의 피크이자 소위 가장 더울 때 더위를 피하기 위해 쉰다는 피서기간이었다.
게다가 휴가철 내내 비 소식이 있어서 다들 걱정을 했지만 나는 또 날씨 요정 부심으로 비 안 올 거다! 걱정마라! 큰소리를 쳐댔다.

지리산에 가기 1~2주 전쯤 우리 부부 역시 연습 삼아 북한산을 갔었다.
근데 아주 새벽에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지 올라갈 때 약간 어지러웠다. 때문에 더더욱 나의 걱정과 두려움이 늘었다.

내가 갈 수 있을까...?? 고도 1915M의 지리산 등산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내가 제안했으니까 해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등산 전날은 내려가는 길에 가볍게 계곡에서 놀고 숙소에 들어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숙박 사장님이 지리산 가려면 최소 10시간은 걸릴 텐데 괜찮겠냐고 했다.
우리는 또 후들후들하면서 괘... 괜찮겠죠? 하며, 전날 술도 먹지 않고 적당히 놀고 일찌감치 잤다.
중간중간 잠에서 깼었는데, 그때마다 하.. 내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훅 들어왔다.

[8월 초 한여름 지리산 등산 준비물]

  • 컵라면 먹을 뜨거운 물 2L(4인분 기준) :보온병에 가득 담아 갔다.
  • 얼음물 500ML, 인당 2병씩
  • 생수 500ML, 인당 1병씩
  • 이온음료 500ML, 2인당 1병씩 :연습 등산 때 다른 사람이 얼린 이온음료를 먹는 걸 보고 너무 먹고 싶어서 사갔으나 지리산에선 오히려 물이 더 땡겼다.
  • 간식(영양갱, 젤리,소세지,마이쮸) :연습 등산 갔을 때 초코바를 가져갔더니 여름이라 다 녹아버려서 초코바대신 영양갱을 챙겼다. 걷다가 당떨어지거나 어지러울 때 낱개 포장된 츄잉캔디류를 먹으면 훨씬 나아진다.
  • 오이 2개 : 내가 까불고 얼리면 아이스크림처럼 더 시원하지 않을까 해서 얼려갔는데 하산할 때나 오이를 먹어서 다 물러 터져 버렸다. 바보 인증..
  • 컵라면 / 젓가락 : 많은 음식을 가져가진 않았다. 연습 등산 때 너무 덥고 지쳐서 음식이 잘 안 들어갔기 때문이다.
  • 휴지 / 물티슈 : 물티슈는 가다가 손에 열이나 답답할 때, 정상에서 발을 닦아낼 때 유용하게 쓰였다. 휴지는 설명할 필요 없이 무조건 필수.
  • 쓰레기 담을 봉투 : 모든 산에서는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 (장터목 대피소에도 없음.) 가져온 쓰레기는 되가져가는 게 등산객의 기본 매너
  • 등산양말 (+여분 1개) : 장시간 등산에 한여름이라 혹시나 발에 땀이 찬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면 발이 병나서 크게 고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에서 쉬는 동안 신발 & 양말 다 벗고 쉬었더니 여분 양말을 쓸 일은 없었다.
  • 손수건 : 더울 때 땀을 닦아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쿨링 효과를 줄 수 있다.
  • 얇은 바람막이나 긴팔 : 아무리 여름이라도 고도가 높은 곳이라 정상에서는 갑자기 기온차가 있을 수 있으므로 챙겨갔는데 실제로 올라가니 '시원한' 정도였지 추운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입을 일은 없었다.
  • 모기약 : 한여름 산은 모기 천국이라 해서 뿌리는 모기약을 준비해, 출발 전 뿌리고 틈틈이 뿌리려고 챙겨갔으나 생각보다 모기는 별로 없었다.
  • 등산모자 : 모기 외 귓가를 윙윙거리는 기타 벌레들이 등산할 때 굉장히 거슬리는데 챙이 넓은 모자를 쓰면 이상하게도 그게 다 차단된다.
  • 마스크 스트랩 : 코로나 시기기 때문에 사람들을 마주치는 구간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는데 매번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다가 마스크를 흘릴 것을 대비해 스트랩이 있으면 정말 편하다.
  • 등산장갑 : 밧줄이나 쇠줄 같은 걸 잡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 등장할 때 맨손으로 잡으면 손이 찝찝하기도 하고 아프다.


지리산 등산 당일 새벽 4시

우리는 아침을 간단하게 미역국과 된장국 (기성품)을 데워서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 4시 50분, 우리는 비장하다.



마치 어디 결투하러 가는 듯이 비장하게 등산화를 고쳐 메고 가는 차 안에서 간밤에 들었던 두려움에 대해서 공유하면서 조용히 갔다.
우리는 백무동코스로 가기로 했다.

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구간별 난이도


우리 부부의 등산 경험은 사실 그리 많지 않지만, 매 등산 시에 뭔가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 같다.
남편은 지리산에 가기 전부터 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구간별 난이도를 나에게 캡처해서 보내줬는데 나는 그때 뭐 그런 걸 생각하면서 가나~ 그냥 가는 거지 하면서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 하산하고,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상기하는 동안에 깨달은 것은 '구간별 난이도 표는 꼭 참고해서 체력 안배를 했어야 하는구나. 필수였구나'라는 것이다.

출발 전 안내표지판을 찍어본다. 갈 길이 멀다. 5.8km 장터목대피소

체력이 좋은 형부를 선두로 우리는 쫄랑쫄랑 따라간다.
틈틈히 다리 스트레칭을 하면서 간다. 그새 장터목대피소는 4.0km 남았다.

낙오자 발생, 삐뽀삐뽀

50분? 1시간가량 지났을까, 아니 그전부터 언니는 점점 힘에 겨워 호흡이 거칠어지고 쉬어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형부 바로 뒤에서 두 번째로 가다가 점점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타자가 되더니 우리에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온몸에 곰 한 마리가 얹혀있는 느낌의 언니 컨디션을 보니 모두가 한마음으로, 언니의 그 몇 안 되는 짐 아니 사실은 간식거리와 휴지 정도만 있었던 언니의 작은 크로스백을 내가 들어주고 형부는 밑에서 언니는 밀어줘가며 으쌰 으쌰 했다.
코로 숨 쉬고 입으로 내쉴 것, 엉덩이로 걸을 것을 계속 이야기해주며 체력 컨트롤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점점 힘에 부쳤던 언니는 갑자기 토하기 시작하고 어지러워해서 한참을 쉬었다 가기로 했다.
우리 보고는 먼저 올라가고 있으라고 해서 또 부지런히 올라갔다.
그런데 한 10분쯤 올라갔나? 형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우리는 다시 내려가야 할 것 같아. 언니가 다리가 안 움직인데, 뜨거운 물 주고, 짐 가지러 올라갈게 "

두둥! 결국 언니는 낙오되었다. 형부는 와이프를 챙기느라 함께 낙오.
나중에 들은 건데 형부는 우리에게 오는 그 길을 뛰어 올라왔다고 했다. 마지막 산행이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형부는 우릴 만나서 쿨스프레이를 뿌려주고, 뜨거운 물을 건네 준 뒤 언니의 짐을 가지고 다시 내려갔다.

우리는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그냥 산행길보다는 계단이 더 힘든 것 같다. 
중간에 마련되어 있는 요구조자 안전쉼터:언니를 위한 공간??!!



그리고 한 20분쯤 더 올라가니, 갑자기 완만하고도 예쁜 풍경이 벌어졌다.
갈대밭 같은 예쁜 길인데 아침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적당히 비추고 있고, 고도가 높아진 만큼 덥기는커녕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냥 에어컨을 은은하게 틀어 놓은 것 같달까?

장터목까지 2.5km, 그리고 갑자기 펼쳐진 예쁜 길

그래서 단톡 창에 진짜 조금만 더 올라왔으면 계속 완만한 경사인데 너무 아깝다고 조금 쉬다가 올라 올 만 하면 올라오라고 말했지만 이미 언니네는 등산 종료... ㅎㅎ

같은 포즈로 지리산의 정기를 맞이해본다.
장터목 대피소 1.5km, 부부 투샷


7시 50분쯤, 장터목 대피소까지 1.5km
출발할 때가 5:30쯤이었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 20분 소요되었다.
여기서 만난 부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거기까지 오는데 우리보다 거진 1시간은 더 소요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애를 데리고 가야 하니까 더 오래 걸리기도 했었을 것 같다.
근데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아! 구간별 난이도를 다시 한번 볼걸.. 언니도 그 초입 부분에서 시간을 오래 잡고 올라왔어야 했다...'라고 말이다.
이건 진짜 두고두고 너무 안타까웠다. 처음 시작 구간을 거의 3시간~3시간 반 정도 잡고 천천히 올라왔다면 같이 완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때 언니를 제외한 우리 세명의 컨디션이 너무 좋았어서 그냥 거의 안 쉬고 슉슉 올라갔더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던 것 같다.
이 등산에서 배운 점 :

"구간별 난이도를 꼭 보고 체력 안배하자!!!"

나 날씨요정과 함께라면.비는 1도 오지 않았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장터목까지 0.5km

이제는 한걸음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여유가 생기고 땀은커녕 뽀송뽀송하기만 했다.
그리고 지리산에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다양한 야생화들이 있다고 했다. 사진에 다 담진 못했지만 어른들이 왜 꽃을 그렇게 찍는지 알 정도로 알록달록 예쁜 야생화들이 많이 있어 올라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까마득하던 장터목 대피소까지의 거리는 이제 0.5km 남았다.!!

보고싶었어! 장터목 대피소

마치 장터목 대피소가 최종 목적지인 것처럼 올라오긴 했으나,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건 왠지 모르게 다 온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장터목 대피소에는 햇반이나 라면 같은 건 안 팔았던 것 같고, 생수 정도만 팔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물이 가장 중요하니까..?! 아니면 쓰레기가 나오고 지저분해져서 일까?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보다 뭘 사 먹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장터목 대피소, 장관이다.

날씨.. 어쩔 건가 대체, 이런 풍경은 내가 유럽여행에 갔을 때나 봤었던 것 같은데
이걸 우리나라에서 보다니.. 정말 멋지다. 그동안 너무 해외만 돌아다녔던 게지..
우리나라 산이 이렇게 멋질 줄 모르고 말이다.

중간에 저 파란색 큰 탱크통은 뭘까 궁금했는데 아마 여기 상주하는 직원들 + 등산객들이 사용할 물 (식용이든 아니든) 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파란하늘,하얀구름,초록색나무 조화롭다.
봐도봐도 멋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멋있었다. 햇빛이 미친 듯이 뜨거워 햇빛을 마주하는 방향으로는 눈도 못 뜰 지경이었지만
덕분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장터목까지 3시간 소요. 생각보다 빨리 올라왔다.

이제는 천왕봉까지 1.7km

이제 표지판은 장터목대피소가 아닌, 천왕봉을 안내하고 있다.
다 왔다는 것!! 조금만 더 힘내면 된다는 것이다!

지체 말고 다시 가보자 해서 장터목에서도 그리 쉬지 않고 올라갔다.

우리남편, 왠만해선 치아를 보이며 웃지 않는데 지리산 정기를 제대로 받나보다.

제석봉 부근은 무언가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이 든다.


제석봉까지 올라가니, 고사목들이 보였다.
고사목은 그냥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 나무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옛날에 나무를 불법으로 채취해가려다가 걸리자 불법 채집꾼들이 다 태워버린 거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그게 회복이 안되고 그냥 저 상태로 남아있다 보니 분위기 자체가 뭔가 쓸쓸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점점 구름도 많아지니 그 쓸쓸함이 배가 되는 듯했다.

천왕봉까지 1.1km
그냥 찍어도 인생샷


올라갈수록 힘들기는커녕 점점 더 사진을 찍으며 가는 구간이 많아졌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우리 둘이 이 산을 전세 낸 것 같았다.
위에 사진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이다. 마치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

천왕봉까지 이제 0.7km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길은 마치 영화 '호빗'에 나오는 배경 같았다.
아기자기하고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 자연에 우리는 비할 것도 안 되겠지만 아무튼 가는 길이 너무 예뻤다.

갑자기 습하고 꽤 경사가 높은 구간이 나온다.


이제 정말로 고지를 앞에 두고 햇빛이 안 들어 살짝 습하고 계단을 만들어 놨는대도 엄청 가파르던 구간이 나온다.
그리고 점점 구름이 맑았던 그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천주'가 새겨져있는 바위


그 습한 코너를 도니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했다.!!
천왕봉 바위에 올라가기 전에 있던 天住(천주) 글자가 새겨져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기 지금 노랗게 보이는 게 옛날에 누군가가 불법으로 노란 페인트칠을 하고 갔는데
지운다고 지운 게 여전히 저렇게 노르스름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제발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왜 자연에 오면서 그런 짓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리산 천왕봉 1915

지리산 천왕봉 1915


드디어!!! 우리는 천왕봉에 도착했다!!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내가 찍을 때만 해도 파란 하늘이 좀 보였는데 5분 사이에 구름이 뒤덮여서 남편이 찍을 때는 파란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저기에 잠시 앉아서 풍경과 우리 부부가 해냈음을 감탄했다.
그리고 언니네와 영상통화를 하고, 가족들과도 영상통화를 했다.

저때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아마 우리의 대화는 이랬던 것 같다.
"이제 우리 둘이 못 할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렇지?"

뭔가 더 끈끈한 부부의 정과 사랑이 생긴 것 같은 그런 벅찬 순간이었다.
이렇게 같이 마음 맞춰 등산하고 서로 밀어주고 기다려주고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우리는 이걸 해냈다.!!
지금도 지리산 등산을 생각하면 '정말 너무 좋았다'라는 말만 연신 내뱉는다.
그리고 또 언젠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감동을 뒤로하고 정상석에서 살짝 내려와 식사를 하기로 했다.

라면 한개씩

THERMOS 보온병에 4인분 어치의 라면 물이 담겨있었지만, 우리는 2인분만 사용했다. ㅎㅎ
산 위에서 먹는 라면은 역시나 맛있다.
과하지 않게 라면만 딱 먹고 쓰레기나 남기는 국물 없이 다 먹어치웠다.
또 정상에서 살짝 내려오면 구름이 걷히는데 정상에서는 구름이 점령한다.
뭔가 안개처럼 끼어있는 구름이 주변 풍경을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기는 한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양말을 벗고 발을 좀 닦고 쉬었다.

발이 계속 너무 습해져 있으면 하산할 땐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발만 좀 숨 쉬게 해 줘도 굉장한 리프레쉬가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스틱도 없었으니.. 발과 두 다리가 진짜 너무 고생했다.

하산하는 길은 살짝 지루하다.


그리고 다시 하산하는 길,
오르는 것보다 하산하는 길이 더 지루하고 고되다.
짐은 사라졌으나 뭔가 같은 길로 내려오니 처음 볼 때와는 아무래도 다르고 무릎과 발목에 쏠리는 하중을 분산시키면서 가자고 하니 더더욱 신경을 많이 쓰고 조심히 내려와야 했다.
그래도 가는 길에 괜히 하트 바위도 찾아보고 곰을 마주쳤을 때 주의사항도 읽어보고 남아있는 음료를 먹어 무게를 줄여보기도 하며 즐겁게 내려왔다.

언니가 중도 하차했던 지점에서 오이를 먹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얼려놓은 오이가 아이스크림 같기는커녕 다 녹아 물러버려서 영 이상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 먹긴 했지만 앞으로 오이를 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드디어 하산!

우리는 오후 2:40-50쯤에 하산을 완료하였고
우리를 다시 데리러 온 언니네 부부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뽀송뽀송해진 그들과 개밥 쉰내 나는 우리들 ㅋㅋ

2021년 8월 5일, 한여름의 지리산 등산을 경험해본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여름 등산이라고 해서 지레 겁을 먹었는데 지리산은 고도 자체가 높은 산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시원했더라고,
그리고 너무 좋았다고 추천한다고 했다.

다음에 갈 때는 우리 아이와 함께 가서,
'엄마 아빠는 해냈다. 너희들도, 우리 가족 모두는 할 수 있다!'라고 말할 그날이 오길 바라본다.

8월 초, 한여름의 지리산 등산 총평

  • 총 소요시간 : 9시간 (5:30 ~ 14:30)
  • 지리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구간별 난이도 표를 꼭 참고해서 체력 안배할 것
  • 8월 초 한여름의 지리산은 생각보다 덥지 않음.
  • 여름의 간식거리는 초콜릿보다는 녹지 않는 양갱 같은 것으로 준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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