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약속
10년 전, 아내가 언니와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갔었다. 그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고, 10년 뒤 성당이 완공될 때 남편과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나도 그때 10년 뒤에 아내와 같이 오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사이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 생겼다.
작년에 회사에서 7년 장기근속 휴가로 한 달을 받았고, 그 휴가를 올해 이맘때에 맞춰 쓰기로 했다. 코로나 시에 맞물려 신혼여행도 취소되었으니,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10월 6일부터 29일까지, 만 4세와 만 2세 두 아이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지낼 예정이다. 사실 10년 전 계획에 아이들은 없었는데, 이제는 그새 넷이 파밀리아가 되어 가게 됐다.
무서운 사람
아침, 아니 새벽 일찍 눈을 떴다. 7시 반에 공항 택시를 예약해 두어서 아이들 준비를 시키려면 6시부터는 해야 했고, 그 전에 집안일을 마무리하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그런데 아내는 4시 반에 일어나 있었다. 무서운 사람. 엄마는 대단한 것 같다.
새벽에 강제로 기상당해 찡찡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나나와 고구마를 간단히 먹은 후 씻겼다. 오랜 비행을 할 예정이므로 그나마 깨끗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출발 직전에 씻기로 했다. 둘째는 그저께 열이 나기 시작해 스테로이드를 먹었는데, 어제 저녁 다시 열이 나서 스테로이드를 먹고 잤다. 이번에는 혹시나 열이 다시 나지 않도록 아침에 한 번 더 먹일 생각이다. (지난번 처방도 그렇게 한 번 더 먹는 식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준비가 되어 기사님께 연락드렸더니, 마침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시다고 했다. 빠르게 채비를 마치고 아이들과 큰 짐들, 쓰레기봉투까지 챙겨서 내려갔다. 기사님은 약간 라이더셔서.. 조금 거칠지만 빠르게 공항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보딩까지
원래 유아 동반 승객은 출발 48시간 전까지 예약센터에 연락해서 좌석 배정과 소아·유아 식사를 신청해야 한다. 알고는 있었는데, 까먹었다. 부랴부랴 전화를 했을 땐 이미 47시간 전이었다. 좌석 배정은 하지 못하고 식사만 겨우 신청했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엄마 품에 안겨 가겠지 싶어 애초에 세 자리만 예매했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공항에 서둘러 가기도 했다. 얼른 가야 그나마 세 자리가 붙은 좌석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자리에 여유가 조금 있어서 붙은 좌석을 배정받았다. 숙박세를 낼 현금을 조금 환전하고 출국 심사를 했다. 바르셀로나는 숙소마다 성인 한 명당 9.5유로씩, 최대 7일까지 숙박세를 받는다. 우리는 에어비앤비라서 퇴실할 때 테이블에 올려두고 나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푸드코트에 가서 간단히 아점을 해결했다. 리모델링을 했는지 깨끗하고 깔끔해서 쾌적했다. 음식도 나름 괜찮았다. 그런데 밥을 먹는 중에 둘째가 살짝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밥을 먹자마자 바로 약을 먹였다. 밥을 먹고 나서, 생전 면세점에서 뭘 구경할 일이 없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한 번 해봤다. 출퇴근할 때 메는 가방이 낡아서 바꿀까 하고 가방을 살펴봤고, 보스 헤드셋을 살까 하고 눈여겨보다가 들어보기도 했다. 확실히 싼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음질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면 한 달 내내 짐만 될 것 같아 구경만 했다. 필요하면 다음 달 출장 때 사기로.
보딩까지 한 시간이 남아서 아이들과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돌아다니다가, 탑승구 근처에 AI로 그림을 그려주는 체험 부스가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사진을 찍으면 펜으로 실제 그림을 그려주는데, 꽤나 잘 그렸다. 그리기가 끝나면 인쇄를 해서 주는데, 그린 것과는 조금 다른 그림이 나왔다. 뭔가 그리기는 퍼포먼스고, 인쇄할 그림은 따로 처리되는 듯했다.





겨울왕국 세 번
아시아나항공 바르셀로나 직항은 14시간 30분을 간다. 아이들과 다니면 Priority lane을 탈 수 있어서 편하다. 그 외의 모든 시간이 고통스럽지만… 비행의 시작은 너무 순조로웠다. 매번 이륙을 무서워하던 아이들이 조금 커서 그런지, 아니면 겨울왕국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무서울까 봐 잡아주는 손도 뿌리치고 화면에 집중했다. 쪼꼬미들이 헤드셋을 끼고 집중하고 있는 게 귀여웠다. 한참 간식도 먹고 겨울왕국도 보고 다 했는데, 3시간도 안 지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조명이 어두워지자 이제 아이들이 찡찡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겨우 5시간쯤 됐나… 화장실도 계속 가고, 과자도 계속 먹고, 초콜릿에 놀잇감까지 꺼내도 어둡고 불편해서 그런지 오래 놀지 못했다. 그 와중에 첫째는 기내 화면으로 겨울왕국을 세 번째 정주행했다. 아시아나는 올해 9월 15일부터 일부 기체(A350 9대, A330 1대)에 스타링크 와이파이를 달아 전 좌석 무료로 열었다고 한다. 운 좋게 우리 비행기가 그중 하나였는데, 아이들이 쌩쌩할 때 하필 넓디넓은 중국을 지나느라 거의 4시간 가량 쓸 수가 없었다.


맨 뒤에서 스낵바를 운영해서, 거기를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지루할 땐 걸어 다녀야지. 자리에 있으면 애들이 찡찡거려서 스낵바에 데려가면, 승무원분들이 말을 걸어주셔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입꾹닫을 했다. 이럴 땐 수줍은 성격이 편리한 것 같기도? 그렇게 두어 시간을 또 보내고 나니 8시간쯤 됐고, 그때부터 스타링크도 다시 서비스를 시작했고 아이들도 다시 잠들어서 그 틈을 타 나도 디즈니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잠깐 봤다.

도착까지 한 시간
확실히 한국 시간으로 밤이 되니, 조명이 밝아지고 사람들이 식사하면서 시끌시끌해도 아이들이 깨지 않는다. 비행 초반에는 에너지가 넘치다가도, 이걸 보면 또 애들은 애들인가 싶다. 다행히 둘째는 비행 내내 열이 나지 않았다. 이제 도착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곧 보자! 바르셀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