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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m를 넘어 하프까지, 2025 MBN 서울마라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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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선 출발선

작년 12월, 오랜만에 10km 마라톤을 뛰고 "다음은 하프다"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1년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겨울에 신청받던 고양하프마라톤이나 서울하프마라톤은 다 신청에 실패했고, 부랴부랴 추가접수로 신청했던 YMCA 마라톤은 갑작스러운 맹장 수술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다. 수술 후 3개월은 조심해야 했고, 몸이 좀 회복되나 싶으니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오랜만의 마라톤

달리기와 마라톤, 그 경계2019년 아내와 함께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당시에 4-5km 정도씩 연습을 몇 번 하고, 뉴발란스 런온 서울에 참가해서 겁 없이 10km를 뛰었다. 당시 기록 1:13

blog.minbeau.com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10월이나 11월쯤 나갈 수 있는 대회를 찾다가 마침 (또) 추가 접수를 받고 있던 'MBN 서울마라톤'을 발견해 덜컥 신청했다.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달리는 꽤 규모 있는 대회였다. 시간이 좀 남았으니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9월 말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집 정리로 정신이 없었고, 회사 일과 해외 출장까지 겹쳤다. 독일 출장 중 숙소 근처 공원에서 5~7km 정도를 서너 번 뛴 게 훈련의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10월 말 귀국 후에는 대상포진에 걸려 대회 직전까지 연습 한 번 하지 못했다. 대회 전전날과 전날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그래도 몸풀기라도 해야지 하고 살살 뛰었는데, 이 때도 무릎이 아파서 3km를 넘지 못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뛰어본 최장거리는 일주일 전 고작 10km인데, 이걸로 21km를 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지난번처럼 '대회 버프'라는 것을 믿고 일단 출발선으로 향했다.

 

출발 전까지는 정말 추웠다. 하프 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처음 뛰는 하프 전략

작년 10km 대회 때 초반 분위기에 휩쓸려 오버페이스를 했다가 후반에 고생한 기억이 생생했다. 이번 목표는 명확했다. '초반부터 내 페이스를 지키자.' 최근 10km 뛸 때 5분 초반대 페이스를 감안하면, 조금 더 천천히 뛰더라도 2시간 이내도 노려볼 만하다고 계산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반팔 반바지만 고집했으나, 이번부터는 타이즈에 바람막이를 입었다. 열 손실을 줄여서 그런지 오히려 컨디션이 더 개운한 느낌이었다. 장거리인 만큼 수분 공급도 중요했다. 10km 때는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뛰었지만, 하프는 다르다고들 한다. 5km 급수대마다 조금씩 목을 축였다. 에너지젤도 챙겼다. 마라톤 패키지에 에너지젤이 2개 왔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에너지가 떨어지기 때문에 에너지젤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 과할지 모르지만 8km마다 하나씩 먹을 수 있도록 2개, 그리고 출발 전 하나까지 총 3개를 챙겼다.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서울을 가로지르다

21km라는 거리는 참 막연했다. 차로 가도 한참 걸리는 광화문에서 잠실까지의 거리를 사람이 두 발로 뛴다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그래도 1km씩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언젠가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발을 뗐다. 다행히 날씨는 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선선했다.

 

종로, 동대문, 왕십리, 건대를 지나 잠실대교에 이르렀다. 탁 트인 한강 뷰를 보니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싶었다. 매번 차 안에서 창밖으로만 보던 이 길을 내가 직접 뛰어서 건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숨이 가쁘거나 다리 근육이 터질 듯한 고통은 딱히 없었다. 평소 연습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발이었다. 장거리를 뛰다 보니 발바닥과 발가락이 계속 눌리고 쓸려 14km를 넘은 시점부터는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거나 잠깐이라도 쉬면 다시 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참았다. 무조건 쉬지 않고 뛴다는 생각뿐이었다.

 

동대문, 잠실대교, 그리고 포토그래퍼 카메라에 잡힌 나

 

1시간 55분 33초

잠실대교를 건너 롯데타워가 눈앞에 보일 때쯤 시계를 봤다. 지금 속도라면 1시간 55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표했던 5:30 페이스 달성이 눈앞이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스퍼트를 올렸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기록은 1시간 55분 33초. 평균 페이스 5:28.

 

골인 지점을 통과하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풀렸다. 걷기조차 힘들었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때는 난간을 붙잡아야 했다. 기념 메달과 간식을 챙겨 바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했던 기록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 다행이다.

 

나름 페이스 유지.. 성공, 하프 메달

 

앞으로 달리기

이번 대회를 통해 부족함을 많이 느꼈지만, 동시에 가능성도 확인했다. 이사를 하면서 중랑천과 가까워졌으니, 이제 핑계 댈 것 없이 뛰기 좋은 환경이다. 이제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체력을 올리고 하프 기록을 단축해야겠다. 최근에는 동네 당근 혼자 뛰는 모임에도 가입했다. 매일 올라오는 다른 분들의 인증 글과 정보들이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다.

 

내년에는 봄과 가을, 하프 대회를 몇 번 더 나가볼 생각이다. 언젠가 풀코스에 도전하는 그날까지, 차근차근 거리를 늘려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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